페인은 이 종목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형제가 모두 금메달을 거머쥔 첫 사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불편한 자세로 스타트 하는 것을 허락받고 좋은 성적을 거뒀다.
마스터 플뢰레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오니다스 피르고스는 그리스인 중에서 첫 근대 올림픽 우승을 한 사람이 되었다.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던 경기는 100m 자유형, 500m 자유형, 1200m 자유형으로 총 3종목이었다.
트랙 경기의 최우수 선수는 프랑스인인 폴 마송으로 독주, 스프린트, 10km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그의 소원에 따라서 다음 경기는 파리에서 열리긴 했지만 만국박람회에 밀려서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리스로 올림픽이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 시민, 미디어, 왕족들에게 호의적인 소식이었다.
첫 번째 경기인 군사소총 부문에서는 판텔리스 카라세브다스가 유일하게 목표물을 전부 맞춰 우승을 차지했다.
펜싱 경기는 고대 올림픽의 재건을 꿈꾸었던 에방겔리스 자파스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자피온에서 열렸으며 이 곳에서 그 전까지는 어떠한 운동 경기도 열리지 않았다.
쿠베르탱과 비켈라스는 올림픽을 개최할 만한 가능성에 대한 의심속에서 올림픽 활동(Olympic Movement) 캠페인을 시작했다.
하지만 쿠베르탱은 이 생각을 강하게 반대했으며 근대 올림픽은 국제적으로 돌아가면서 열려야 된다고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즉 다양한 체중을 가진 선수 중 한 명만이 1위를 거머쥘 수 있다는 얘기였다.
500m 경기에서는 경쟁자를 1분 30초 이상 따돌린 오스트리아의 수영선수인 파울 네우만이 우승을 차지했다.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경기를 보기위해 피레아스 해안에 있는 제아 만에 줄을 섰다.
하지만 그는 자유형 100m와 1200m 경기에 출전해서 우승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