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는 일본 도쿄에서 체류하면서 거주하기 위한 부동산을 구입하였으며 운현궁 도쿄 별저로 불렸다.
1938년 12월 27일에 일본 육군대학교에 제54기생으로 입교하여 1941년 7월 31일에 육군대학교를 졸업하였다.
합사 자체가 부당한 일이지만 야스쿠니 신사의 논리를 따른다면 사망 당시에 일본 황족과 동등한 지위였던 이우는 일본 황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 신사에 합사되었어야 하였지만 일반 군인으로 합사되었다.
1936년 8월 1일에 도쿄 야전포병 제8연대로 배속되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육군포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와 더불어 “왕공족은 대한제국 황실을 예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고안한 일본 황족과 일본 화족, 조선 귀족 사이의 특수한 지위로 협력에 대한 대가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공족 중 이재면과 이준용, 이재곤, 이해승, 이재극 등 구체적인 매국행위를 일삼은 인사들은 친일 행적으로 사전에 수록되었으나 영친왕 이은과 이우는 사실상 볼모의 처지였음을 감안하여 제외하였다”고 밝혔다.
